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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내가 없어졌다

몇 달 전에 갑자기 아내가 없어졌다. 그녀의 침대는 그 후로 죽 비어있다. 은퇴했으니 일을 나가진 않았을 테고, 외출했나? 곧 돌아올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아내가 쓰던 달력은 아직 종착역도 아닌데 3월에 고장이 난 듯 멈춰 서있다. 옷장의 옷들, 신발장의 구두들은 눈 한번 뜨지 않고 그대로다. 응접실의 세간도 그렇고 부엌에 가면 그녀가 꾸려놓았을지 모를 반찬이 아직도 냉장고에 있을 듯하다. 아내가 가꾸던 앞뜰과 뒷마당 잔디밭 끝의 나지막한 비탈 위로 화초와 꽃들은 속없이 활짝 웃는 듯 피어나고 있다.     오랜 병고에 시달리던 아내가 몇 달 전에 하늘나란지 어딘가로 떠났다. 죽기 2주 전, 응급실에 들어갈 때, 늘 그랬듯이 하루 이틀 응급처치 후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꿰뚫고 있어서 상태가 안 좋을 때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다그쳐도 스스로 가늠하고 여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한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중환자실로 옮겨졌던 거였다. 몇 차례 수술할 때를 제외하곤 중환자실은 처음이었다. 저혈압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아내는 직장암 수술에다 소장이 꼬여서 했던 수술 자리와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질러댔다. 진통 효과가 떨어질 때마다 의료진은 모르핀 주사로 아내 몸뚱어리의 단단한 고통을 흐트러트리고 멈추게 했다. 그녀의 통증은 내 것처럼 받아들이기에 너무 힘들어 의료진에게 제발 통증만은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었다.     모르핀 진통제의 함량은 날마다 점점 높아갔고 코에 끼웠던 산소 호스가 얼굴을 덮어쓰듯 큰 산소마스크로 바뀌면서 아내의 몰골과 의식은 현존하는 세상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거역할 수 없는 강물의 물살에 밀려 가물가물 세상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차디찬 손을 잡아보지만 떠내려가는 그녀의 온기를 되찾을 수 없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아니면 최소한 잘 있으라는 작별의 인사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칠고 힘겹게 쉴 때 내 마음에 담아 준비해뒀던 ‘내가 당신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미안해. 용서해주고 다 내려놓고 가벼이…’, 그리고 (티벳사자의서)에서, 또는 많은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대로 ‘어디선가 황홀한 빛이 나타나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 빛을 따라 들어가’라는 말을 건네주지 못했다. 길 떠나는 아내에게 끝내 노잣돈 한 푼 못 주고 낯선 먼 길을 빈손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거칠게 쉬던 숨이 잦아들다가 멈춰버리자 결국 그게 그녀의 세상과의 마지막이었다. 태어나 꽃피고 아름답고 슬펐던 삶이라는 한바탕 꿈이 깨어지는 찰나였다. 또한 삶의 괴로움과 병고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내가 남은 식구들과 작별하는 마지막이 어떻게 이렇게 엉성하고 간단하고 허무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과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은 창세기에서 왜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귀띔이라도 안 해주었나?     밀려오는 통탄, 내 아내에게 준 많은 잘못과 상처들을 용서받지 못한 회한 등 엄청난 무게의 슬픔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나는 희미한 온기가 남은 아내의 벌어진 눈과 입을 꼬옥 눌러 죽음을 닫았다. 신의 사랑이라던가 무슨 계시나 은총 같은 공허한 약속들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게 아내의 죽음에 함께 가둬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긴가민가하면서 알고 있거나 추구했던 삶의 의미나 죽음에 관한 신관, 종교나 철학적 사고는 무용이었다. 내가 알지만, 내 반쪽이었던 아내의 삶은 허무맹랑할 정도로 무의미했다. 세상 만물에 대한 의미도 내가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달렸을 뿐 어떤 고정된 절대적 가치는 없는 것처럼. 그러니 아내가 살아온 삶과 남겨진 추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부질없고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녀의 예순아홉 생애는 죽음 앞에서 백 살을 산 사람이 있다고 한들 매한가지 아닌가.   나는 장례식 없이 가족만 모여서 조용한 이별식을 한 후에 화장하기로 장례회사와 계약했다. 평소 조문객 불러 모아 치르는 장례식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례식은 죽은 자와는 상관없이 산 자들 위주로 치러졌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시신을 진열하고 장례식장 입구에서는 부조금을 접수하는 방식을 나는 혐오해 왔던 터였다. 그리고는 그 접수된 부조금으로 장례비 계산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아내와 평소에 그런 죽음 후의 절차를 상의한 적도 없으니 그 사항은 공란이었기에 나 혼자 내린 결정의 이유이고 배경이었다. 그러나 곧 내 결정을 수정해야 했다. 자식들과 처가 형제들이 반대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장례 일정을 잡고 장례회사와 연계된 작은 교회를 정했다.     장례식은 교회에서 불교식으로 치렀다. 시작할 때 나는 조문객에게 일러뒀다. 기독교 신자로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으나 이제부터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겠다며 몇 년 전 불교에 입문했으므로 불교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내겐 예수와 석가모니 부처와의 경계가 없노라고 덧붙였다. 장례식을 끝내고 화장한 유골함을 영정 사진, 꽃과 함께 집안 응접실에 봉안해 모셨다. 산소에 갈 필요가 없어 좋았다. 때때로 사진을 보고 ‘왜 그랬어?’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곤 한다. 요즘엔 ‘왜 그랬어?’는 원망 투라서 뺐다. 딸내미도 제 아들 생일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다녀왔다고 엄마에게 보고를 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했잖은가, 생겨난 것은 모두 사라진다고. 이제 시간은 비밀처럼 흘러 후회되는 아픔도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져 간다. 아내가 없어졌듯이 그리움도 차차 없어지겠지. 김윤기 / 수필가수필 아내 아내 몸뚱어리 장례식장 입구 석가모니 부처님

2022-09-22

[시조가 있는 아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무명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손으로 흰 구름 가리키고   말 아니코 간다   -청구영언 진본   그리운 탈속의 경지     작가를 알 수 없는 이 시조는 문맥을 초월한 즉흥적 직관적 세계와 만나게 한다. 즉 다리 위에 중이 가니까 물 아래 그림자가 지는 게 아니라, 물 아래에 그림자가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모순 어법이지만 자연을 앞세우고 인간을 뒤로 세운 것이다.   저 스님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어보아도 말 아니하고 손으로 흰 구름을 가리키니 그야말로 탈속의 경지라고 하겠다. 이 스님은 혹시 안거(安居)에 들 수행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거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생긴 것인데, 인도에서는 우기(雨期)에 땅속의 작은 동물들이 기어 나오기 때문에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그것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고 또 각종 질병이 나도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기의 3개월은 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설하신 것이 안거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혹서기와 혹한기가 있는 나라여서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를 하안거,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를 동안거로 해서 스님들이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그림자 무명씨 아래 그림자 정월 보름 석가모니 부처님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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